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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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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서원 전경
심곡서원 전경
정암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을 배향하는 서원 용인 심곡서원 심곡서원은 조선 중기 중종 대의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정암 조광조 (1482∼1519) 선생의 뜻을 기리고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선생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활약하면서 급 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기묘사화 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 하였습니다.

먼 훗날 효종 원년(1650)에 조광조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서원 을 설립하였는데, 효종은 ‘심곡’이라는 현판과 토지·노비 등을 하사하여 심곡서원은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이 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무사했던 전국 47개 서원·사당 중의 하나로서, 선현에 대한 제사 와 지방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심곡서원 입구의 홍살문과 외삼문·강당·내삼문·사우(사당)가 거의 일 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강당은 서원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행 사를 치르고 유림들이 모여 회의와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이며, 각 칸마 다 널문을 달아 사면을 전부 열 수 있게 하였습니다. 강당 안에는 숙종의 어제어필이 담긴 현판과 서원의 규약 등이 걸려 있습니다.

강당 옆에는 서원의 책과 문서가 보관된 장서각이 있고, 제사를 준비 하는 재실이자 배향객들의 숙소로도 사용된 건물인 고직사가 있습니다.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건물인 사당은 앞면에 트인 퇴칸 이 있으며, 옆 면과 뒷면에는 화방벽 을 설치하였습니다. 정면 3칸·측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입니다. 이곳 에는 정암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문신, 조광조를 위해 여러 차례 상소를 하였음)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중정일(中丁 日)에 향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심곡서원 사당
심곡서원 사당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았으며, 내삼문은 3칸의 솟을대문 형식입니다. 사당 뒤쪽에는 수령 5백여 년 된 느티나무 가 있는데,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

심곡서원중건기(1935년)과 심곡서원도(시기미상) 등의 자료를 참고 하면 심곡서원에는 사당과 동·서재가 최초에 건축되었고, 후에 강당이 세워졌으며, 현재의 연지 인근에 임심루, 산앙재, 문향각 등이 건축되었 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동·서재는 현재 강당 뒤편에 있는 치사재와 장서각의 위치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이후 현재 복원되어 있는 위치에 동·서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심곡서원은 최초 사당을 중심으로 제향기능을 강조하여 지어졌 으며, 이후 앞쪽에 강당을 두고 뒤편에 재사를 두는 전당후재의 모습을 보였고, 심곡서원도가 그려진 시기에 앞서서 전재후당의 공간구성을 보 이고 있음을 옛 자료를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심곡서원 강당
심곡서원 강당
심곡서원 장서각
심곡서원 장서각
심곡서원은 상현마을 금호 베스트빌 아파트 입구 근처에 자리하고 있으며, 심곡초등학교에서 약 5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