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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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구청 읍ㆍ면ㆍ동 지명유래

포곡읍(蒲谷邑) 지명유래
포곡이란 지명의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이 지역을 지나는 경안천 주변에 무수히 많은 창포가 자생하고 있어, 창포의 고장이라 불리워지기 시작하였다는 설이다. 또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창포 포(蒲)자가 아닌 물가 포(浦)자로 되어 있다. 끝으로 한글학회에서 간행한 용인군의 지명총람에는 경안천이 면의 한 복판을 뚫고 흐르므로 포곡면이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모현읍(慕賢邑) 지명유래
모현읍은 본래는 쇄포면(灑布面)이라 하였다. 이는 삼으로 직조한 베와 목화에서 뽑아낸 실로 직조한 무명 천을 잿물에 삶아내고 물에 담궜다가 햇볕에 널어 빛이 바래도록 포쇄하던 곳이라고 한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 후 고려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유해를 능원리에 안장한 후부터는‘충신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모현(慕賢)으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묘현(墓賢)’이라고 한 기록이 있고, 『용인현읍지』등에는 모현촌면(慕賢村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1914년 발행된 「군현개정구역표」에는 모현면(慕賢面)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용인군 지명위원회에서 최종 확정한 것이 오늘의 모현읍(慕賢邑)이다.
이동읍(二東邑) 지명유래
조선시대 태종 14년(1414) 용구와 처인을 합쳐서 용인현이 된 후 1895년 4월 지방관제가 개편될 때까지 용인현에 속해있던 상동촌면(上東村面)과 하동촌면(下東村面) 2개의 면이 있었다. 이 두 동(東)을 합쳤다하여 이동(二東)이라 한다.
양지면(陽智面) 지명유래
양지면은 본래 수주(水州, 현재의 수원)에 속한 양랑촌부곡(陽良村部曲)이었는데 조선시대 정종 원년(1399)부터 양지현이라 하였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지방 관제 개편에 따라 1895년 양지군으로 되었으나 1914년 4월 1일 읍내면, 주동면, 주북면, 주서면 등 4개 면을 합치고 읍내의 끝자인 내자를 합쳐 내사면으로 개정하였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 식민통치 시절 명명된 일제식 지명을 정비할 때 옛 양지현의 명칭을 되살려서 양지면이라 하였다.
원삼면(遠三面) 지명유래
원삼면은 본래 죽산군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양지현에 편입된 곳이다. 원일면, 목악면, 주서면 일원을 합쳤다하여 원삼면이라 하며 고당리ㆍ사암리ㆍ 좌항리ㆍ맹리ㆍ미평리ㆍ가재월리ㆍ두창리ㆍ독성리ㆍ죽능리ㆍ목신리ㆍ학일리ㆍ문촌리의 12개 리를 관할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목악면과 주서면은 옛 양지현에 속해있었으며 지금의 사암리와 좌찬고개 일원이며 목악면은 학일리, 목악리, 신기리 등을 관할하였고 원일면은 맹동, 좌찬리, 행군리 등을 관할하였다.
백암면(白岩面) 지명유래
백암면은 본래 죽산군 근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백암 등 14개동리를 관할하고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죽산군의 근일면,근삼면,양지군의 박곡면, 고안면 등 용인군 바깥쪽의 4개면을 합쳤다는 의미에서 외사면이라 칭하게 되었다. 이때 외사면은 가창리, 백암리, 근창리, 근곡리, 근삼리, 용천리, 장평리, 석천리, 옥산리, 백봉리, 고안리 등 12개동리를 관할하게 되었고 면소재지를 백암리에 두게 되었다. 외사면에서 백암면으로 명칭 변경한 것은 96.3.1부터이다.
남사면(南四面) 지명유래
원래 면의 일부가 수원부(水原府)의 처인부곡이었다. 조선 태조 6년(1397)에 현으로 승격되어 방리(坊里)를 관장하다가 태종 13년(1413)에 용구현과 합쳐 용인현이 된후 관아(官衙)를 폐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 때 현내면(완장동, 아곡 남산동 일원), 도촌면(산정리, 내기 ,수세동 일원), 서촌면(원포, 봉명동, 동막, 사후 일원), 남촌면(원암동, 전공동, 방축동, 진목동 일원) 등 4개 면을 합치고, 용인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남사(南四)라 하였다.
유림동(柳林洞) 지명유래
용인읍 유방리와 고림리 지역으로 1996년 3월 1일 용인군이 용인시로 승격될 대 유방리의 유자와 고림리의 림자를 합혀서 유림동이라 하였다.유방동은 마을에 밀유양림(密柳楊林, 버드나무가 빽빽하다는 의미)이 골짜기에 있어서 유(柳)자와 곡(谷)자를 합해서 유곡(柳谷)이라 불리우던 마을과 방축동(防築洞)을 합쳐서 생긴 지명이다. 방축동은 마을 동쪽에 경안천의 본류가 흐르는데 장마가 되면 제방이 떠내려가 이를 복구하고 난 후 하천의 범람을 막았다고 하여 방축동이라 부른다는 속설이 있다.고림동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고진(古陳)과 임원(林院)의 두 글자를 합하여 고림리라 하였다. 1996년 3월 1일 시 승격 때 유림동에 속하게 되었다. 고진은 임진왜란 때 진터가 있었으므로 옛 진말, 예진말 또는 이진말 등으로 불리웠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고진이라고 하였다. 임원은 본래 마을에 숲이 많아서 숲원이, 수본이 등으로 불리우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였다.
역삼동(驛三洞) 지명유래
용인읍의 역북리, 삼가리 지역으로 1996년 3월 1일 용인시 승격과 동시에 동이 되었고 역북리와 삼가리를 합쳐 역삼동이 되었다.역북동은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역동(驛洞)과 북동(北洞)을 합쳐 역북리라 하였으며 1996년 3월 1일 용인군이 시로 승격될 때 역북동으로 편입되었다.삼가동의 유래를 보면 동백동으로 넘어가는 큰 메주고개, 상하동 쪽으로 넘어가는 작은 메주고개, 동쪽으로 가는 길 등 세 갈래 길이 있어서 세거리, 삼가리, 삼거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동부동(東部洞) 지명유래
용인읍의 마평리, 운학리, 호리, 해곡리 지역으로 용인시 승격 때 4개의 리를 합해서 동으로 하였다. 동 명칭을 두고 운마동, 마운동, 운평동 등 운학리와 마평리에서 각 한 글자씩 따서 정하려 하였으나 두 개 마을 머리글자의 서열을 놓고 의견이 상충하였다. 이에 옛 용인읍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동부동이라 하였다.마평동은 마북리?마남리의 마자와 신평리의 평자를 합하였고 운학동은 어득운동의 운자와 학촌의 학자를 따서 정하였다. 해곡동은 예전에 조판서라는 사람이 이 마을에 선친의 묘를 쓰고 나서‘산수는 수려하고 좋으나 바다가 있어야 자손 만대가 길하다’하여 마을에 연못을 파고 이를 바다라 하였기 때문에 해곡동이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호동은 마을 앞쪽에 있는 산의 형상이 호랑이가 누운 모양과 같다고 하여 호동이라 한다.
중앙동(中央洞) 지명유래
1996년 3월 1일 용인시 승격 때 김량장리와 남리 전 지역을 합치고 용인시의 중앙이 된다하여 중앙동이라 하였다.김량장동의 유래를 살펴보면 고려시대에 김령역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김령역ㆍ김령원이 있었고 김령장이라는 시장이 섰다고 하며 훗날 변음되어 '김량장'이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김량장 또는 김량이라는 사람이 맨 처음 시장을 벌여서 그의 이름을 따 김량장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남동은 원래 수여면의 남리였는데 수여면의 남단에 있어 남리라고 불렸고 시 승격 시 남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