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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흥구 읍ㆍ면ㆍ동 지명유래

보정동(寶亭洞) 지명유래
용인현 구흥면 역촌의 일부로 서변면의 보수원, 이현, 독정리를 합치고 보수원에 정자가 있어 보(寶)자와 정(亭)자를 합쳐 보정이라 하였다.
마북동(痲北洞) 지명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동변면의 마곡과 북동을 합쳐 마북리라 하였고 2005년 마북동(痲北洞)이 되었다. 마곡은 옛날 마곡 부락에 마운사(痲雲寺)라는 사찰이 있어 유래되었으며 북동은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구성동(駒城洞) 지명유래
고구려가 자국에 편입한 백제 영지를 구성(駒城)으로 명명한 것은 우리말의 고어에 크다는 뜻의‘말아’(예:말매미, 말 잠자리)를 한자음 구(駒)로 표기한 것으로 풀이된다.‘마라’또는‘말’은 마루의 동의어로서 크다, 높다의 의미를 포함한다고 할 때, 구성은 큰 성 또는 마라재(높은 곳)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풀이되며 본래 고구려의 구성(駒城)에서 유래된 용인시 최초의 행정지명이다.구성동의 법정동으로 언남동(彦南洞)과 청덕동(淸德洞)이 있다. 언남동은 언동과 남동이 합쳐진 지명으로 남동은 남쪽에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언동의 언은 선비 언자로 덕망 높은 선비를 지칭하며 이곳에 향교가 있어서 언동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청덕동은 동변면의 수청동(水淸洞)과 덕수동(德水洞)에서 각각 청자와 덕자를 따서 정해졌다. 수청동은 마을 뒷산이 물푸레울인데 물푸레는‘물푸른’의 변음이라고 할 때‘물푸른’의 한자 표기가 수청동이 된다. 덕수동은 예부터 법화산 물푸레울에서 발원하는 물이 유난히 맑고 푸르러 덕수라 하였다고 하는데 덕은 크다는 뜻도 있으므로 큰 물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지명으로 풀이하고 있다.
신갈동(新葛洞) 지명유래
본래 용인현 구흥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할 때 역촌 일부, 신촌, 미동, 갈천, 상촌, 상관곡리 등을 합치고 신촌과 갈천의 첫 자를 따서 신갈동(新葛洞)이라 하였다. 갈천(葛川)은 마을 앞에 흐르는 내가 칡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갈천이라 했다는 설과 경주김씨 문중에 김원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호가 갈천이었는데, 이 사람이 사는 곳을 일러 갈곡, 또는 갈천이라 하던 것이 지명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영덕동(靈德洞) 지명유래
본래 용인현의 지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통리와 덕동 일부를 합치고 영통리의 영(靈)자와 덕동의 덕(德)자를 합쳐서 영덕동(靈德洞)이라 하였다. 영통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고유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지형이 염통처럼 생겼다고 해서 염통 혹은 영통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영(靈)과 통(通)하는 곳’이라 영통이라 불렀다는 설과 고개에서 신령스러운 노인이 나타났다든가, 근처의 청명산에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보물이 있었다는 설 등이 있다.영덕동의 법정동으로 하갈동이 있다. 마을 앞에 흐르는 내가 칡넝쿨과 같은 형상이므로 이를 갈천이라 하고 이 마을이 갈천(葛川) 아래에 있다 하여 하갈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구갈동(舊葛洞) 지명유래
본래 용인현의 구흥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구흥면의 하관곡리와 내기, 갈곡을 합쳐 구갈(舊葛)이라 하였는데 신갈(新葛)의 반대 개념으로 정해졌다.
동백동(東栢洞) 지명유래
본래 용인현 동변면(洞邊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동막(東幕)과 백현(栢峴)을 합쳐서 동백리라 하였으며 2005년 10월 31일 구청 개청에 따라 동백동으로 변경되었다. 동막은 임진왜란 때 관군이 진을 쳤던 막이 있었으며 용인현의 동쪽 지역이어서 동막이라 하였다는 속설이 있다. 처음는 집이 없었으나 막을 짓고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동막이라 했다고도 한다. 백현은 동백동에서 포곡읍 마성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이 고개가 잣고개인데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백현(잣나무 백, 고개 현)이다.동백동의 법정동으로 중동(中洞)이 있다. 본래 용인현 동변면(洞邊面)에 속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중동(中洞) 일원을 중리로 고쳤으며 2005년 10월 31일 구청 개청에 따라 중동으로 변동되었다.
상하동(上下洞) 지명유래
본래 용인현의 동변면(洞邊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될시 상지석(上支石), 하지석(下支石)과 수원동(壽院洞)을 병합하고 상?하지석의 이름을 따서 상하리라 하였으며, 2005년 10월 31일 구청 개청에 따라 상하동(上下洞)이 되었다. 마을에 지석묘가 있었는데 위쪽에 있는 것을 상지석, 아래쪽에 있는 것을 하지석이라 하였는데 이에 연유하여 상지석리와 하지석리라 하였다. 수원동은 예부터 이 마을에 수명장수한 사람이 많아서 수원동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상갈동(上葛洞) 지명유래
본래 용인현의 기곡면 지역으로서 갈천 위쪽에 위치하므로 윗갈래, 또는 상갈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금화, 중갈천, 상갈천을 합쳐서 상갈(上葛)이라 하였다. 상갈동의 법정동으로 보라동(甫羅洞)과 지곡동(芝谷洞)이 있다. 보라동의 지명 유래와 관련해서는 1789년(정조 13년)에 간행된『호구총수』에 보라산리(甫羅山里)라고 기록된 것에서 연유했다는 설, 이 마을 앞의 큰 고목나무에 보라매가 서식하였기 때문에 보라매, 보라미라고 불렸다는 설 등이 있다. 지곡동은 이 마을에 지초(芝草)가 많이 자생하였고 또 골이 깊었으므로 지곡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부아산 뒤쪽의 골짜기가 되므로 뒤실-디실-지실이 지곡으로 되었다고도 전한다.
서농동(書農洞) 지명유래
본래 용인군 기곡면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농사리와 내서천리를 병합하여 농서리가 되어 기흥면에 편입되었다. 1985년 10월 1일 기흥면이 기흥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6년 3월 1일에는 도농복합으로 용인군이 용인시로 승격되었고, 2005년 10월 31일 기흥구가 신설되면서 기존 기흥읍에 있었던 서천리와 농서리가 통합되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서농동(書農洞)의 법정동으로는 농서동(農書洞)과 서천동(書川洞)이 있다. 농서동은 농사리의 농자와 서천리의 서자를 합쳐서 만들었다. 서천동의 지명은 서그내에서 유래되었다. 서천의 이전 표기가 서근천(鋤斤川)인데 이는 187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기록되어 있다. 서근천은 서근내의 한자표기로, 서근내가 서그내가 되고 이것이 또 변형되어 서천(鋤川)이 되고 서천(書川)으로 와전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선비들이 동네 앞에 흐르는 냇가에 모여 글을 읽었으므로 글 서(書)의 뜻과 내(川)를 합쳐 서천리라 하였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기흥동(器興洞) 지명유래
기흥동(器興洞)은 기곡면(器谷面)의‘기’자와 구흥면(駒興面)의‘흥’에서 두 개의 면을 합치면서 각 한 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기흥동의 법정동으로는 공세동(貢稅洞)과 고매동(古梅洞)이 있다. 각각의 유래를 살펴보면 공세동은 현물세를 바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던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고매동은 마을의 지형이 예부터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이어서 고매라 불리었다.
  • 담당부서기흥구 자치행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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