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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구 읍ㆍ면ㆍ동 지명유래

풍덕천동(豊德川洞) 지명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수진면(水眞面)의 토월리(吐月里), 신리(新里), 정평리(亭坪里) 일부를 합쳐서 풍덕천리라 하였고 2001년 행정구역 개편 때 풍덕천동(豊德川洞)이 되었다. 마을 앞에 하천이 있어서 이를 풍덕내라 하였는데 하천의 이름을 따서 풍덕천이라 하였다는 설과 하천에 풍덕교라는 다리가 있어서 풍덕천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풍덕천(川)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본내는 래(來)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풍덕내라고 하고 있지만 이를 풀이하면 "덕이 크신 분이 풍덕에서 오신다"는 뜻인데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를 용인에 모시게 된 인연을 맺어준 지명이라고 한다. 즉 포은 선생이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 조영규에게 피살 된 후 풍덕군에 일시 매장 되었다가 후에 선생의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천묘하고자 하였다. 그 면례(緬禮) 행렬이 수지읍 풍덕래에 이르자 면례행렬 앞에 세웠던 명정이 바람에 날려 지금의 묘소가 있는 곳에 떨어졌다. 남쪽으로 길을 떠나고자 하면 상여가 움직이지 않아 명정이 떨어진 곳으로 가자는 뜻이라 하여 할 수 없이 그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상여가 움직였고 그래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풍덕에서 오신다(豊德來)’고 하여 우연치 않은 지명대로 충혼의백(忠魂義魄)을 맞이하였지만 1914년 지명 표기작업을 할 때 올 래(來)자를 내 천(川)자로 바꾸어 풍덕천(豊德川)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또 풍덕천이 물이 깊어 명주 한필이 다 들어갔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풍덩풍덩 빠져죽어 풍덩내(川)라고 하던 것이 풍덕이 되었다는 일설도 있다.
신봉동(新鳳洞) 지명유래
이곳은 본래 용인군 수진면의 지역이었다. 신봉리의 유래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리(新里)와 서봉동(捿鳳洞)을 병합할 때 신리의 신자와 서봉동의 봉자를 따서 신봉리라 하였고 2005년 10월 수지읍이 수지구로 승격될 때 신봉동(新鳳洞)이 되었다.>이곳의 옛 지명은 시봉굴이었다. 시봉굴은 서봉골의 사투리인데, 서봉골은 서봉산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서봉산은 광교산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본래 광악산(光嶽山)이었는데 928년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평정하고 광악산 행궁에 머물면서 군사들을 위로하고 있을 때 산 정상에서 광채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이 산은 부처가 가르침을 내리는 산이라 하여 산 이름을 광교(光敎)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따라서 처음에는 광(光)과 비슷한 의미의 서(瑞)를 썼으나 (예 : 서봉산 또는 서봉사) 임진왜란 때 서봉사가 소실된 이후에는 절터에 잡초가 우거지고 새들만 깃든다는 뜻에서 깃들 서(棲)자를 썼다.
죽전동(竹田洞) 지명유래
본래 용인군 수진면(옛 수지면의 이름)의 지역으로서 큰 못이 있어 대지(大池)라고도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감바위, 점촌, 풍덕내, 일부를 병합하여 죽전리(竹田里)라 해서 읍삼(구성)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1983호에 의하여 다시 수지면에 편입되었다. 죽전이라는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하나의 전설이 전해지는데 이곳으로부터 약 10리 되는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와 관계가 깊다. 정몽주 선생을 모신 상여와 명정이 이 땅을 지나갔기에 만고에 충신을 사모하는 민초들에 의해 이곳의 지명을 죽절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죽이란 대나무로 충신을 뜻하며 절은 마디가 있는 나무이니 역시 대나무라 충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죽절이 죽전으로 변했다.
동천동(東川洞) 지명유래
본용인현 수진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동막리(東幕里)와 원천동(遠川洞)을 합치고 각각 한 글자씩 따서 동천(東川)이라고 하였다. 동막리는 즉 동막곡에서 유래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예부터 광주군과 용인군의 경계가 하천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앞에 막을 지어 표계를 삼아 동막이라 하였다는 속설과 병자호란 때 험천에서 청나라 군사와 큰 전투를 벌일 때 군대의 막사가 무수히 많아서 동막이라고 하였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상현동(上峴洞) 지명유래
용인현 지내면의 상리(上里)와 수진면의 정평리(亭坪里) 일부를 합치고 마을 북쪽에 만현 고개가 있어서 상리의 상자와 만현의 현자를 합쳐서 상현(上峴)이라 하였다.
성복동(星福洞) 지명유래
성주이씨가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어 집성촌이 되었는데 이씨들의 복을 받게 되라는 뜻으로 성복(盛福)이라 하였으나 후에 별 성(星)자로 바뀌어 성복동(星福洞)이 되었다는 속설이 있다.
  • 담당부서수지구 자치행정과
  • 문의031-324-8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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